캐딜락은 본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CADILLAC XT6

캐딜락은 본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캐딜락 XT6



풀사이즈 SUV가 인기라지만 국내 도로와 주거 여건상 타고 다니라면 주저하게 된다. 제아무리 승차감이 편하다고 해도 협소한 길에 들어서면 큰 덩치 덕에 긴장되기 마련. X5, 카이엔, GLE, 투아렉, XC90, GV80이 잘 팔리는 이유도 적당한 차체 사이즈가 한몫 하지 않을까. 그러나 캐딜락은 서술한 차급의 SUV가 없었다. 미국 전용인 에스컬레이드 외에 콤팩트한 XT4, XT5뿐이었다. 상대적으로 SUV 카테고리가 빈약했던 캐딜락이 드디어 XT6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차는 XT 시리즈의 플래그십으로, 개선된 V6 3.6L 엔진, 하이드라매틱 9단 변속기, 능동형 댐퍼 조합으로 젊은 주행감각을 선사한다.

게다가 3열 구성으로 7명 모두에게 편안함을 제공한다.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보유한 캐딜락

소위 ‘차잘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독일차 마니아가 많다. 독일차 외에 다른 수입차를 구매하려 하면 참견하기 일쑤다. 때로는 무례할 정도로 본인의 주장을 설파하고 관철시킨다. 자동차 역사에 획을 그은 캐딜락, 포드도 절대 벤츠와 BMW에 비벼볼 수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요즘 차 중 가장 잘생긴 그릴


정말로 그럴까? 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전기 스타터와 전기 램프뿐만 아니라 지금의 고급 양산차에 사용되는 자동변속기, 에어서스펜션, 메모리 시트, 파워윈도, 자동공조 시스템, 자동 트렁크 개폐, 나이트 비전 등이 모두 캐딜락(모기업 GM)이 업계 최초로 도입한 것들이다. 게다가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는 반세기 가량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에 공급되었으며, 자성유체식 댐퍼 역시 캐딜락이 원조다. 



자꾸만 자연흡기 유닛의 본능을 깨우고 싶은 자극을 받는다


고급차에 필요한 혁신적인 기술은 죄다 캐딜락이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다기통 최고봉인 V16과 더불어 V8, V12 엔진의 표준도 만들었다. 조금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탑승객의 안전을 생각해 최초로 강철 지붕을 덮었다. 목재와 천 지붕이 흔하던 시절에 말이다. 캐딜락의 역사와 저력은 쉽게 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에스칼라 디자인 큐가 묻어난다


썩어도 준치

오일쇼크 이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캐딜락은 당시 각종 첨단 기술과 호화로움으로 무장한 세계 최고의 럭셔리 메이커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일쇼크 이후부터는 섀시 공용화(GM J 플랫폼)로 사골처럼 우려먹고 프리미엄 세단에 느닷없는 앞바퀴굴림 구동계를 얹는 등 잘못된 판단으로 예전 영광을 퇴색시켰다. 잃어버린 40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상시 댐핑 컨트롤로 노면의 충격을 잘 다스린다


모기업 GM이 캐딜락을 원래의 럭셔리 메이커로 변모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독일, 일본차의 득세로 점점 설자리를 잃었다. 2003년 선보인 CTS는 유럽 라이벌을 철저히 벤치마킹한 뒷바퀴 굴림 세단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미 기운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힘에 부쳤다. 썩어도 준치라던가? 절치부심한 캐딜락은 2016년 컨셉트카인 에스칼라를 기점으로 기존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냈다. 에스칼라 디자인 큐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페이스리프트 CT6를 시작으로 XT6, 신형 에스컬레이드까지 이어지고 있다. XT 시리즈에서 플래그십을 담당하는 이 차는 크로스오버인 XT4, XT5와 달리 전통적인 D필러가 달린 2박스 레이아웃이다.



턴 인디케이터 램프의 실제 색은 레드


캐딜락은 전통적으로 직선을 잘 다루는 메이커로 XT6 역시 곳곳에 에지를 더했다. 각이 살아있는 크레스트 그릴과 가느다란 와이드 램프 하우징, 쭉 뻗은 캐릭터라인과 후면은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둥글고 다소 밋밋한 차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국내는 스포츠 단일 트림만 들어와서 그릴과 윈도 프레임에 블랙 하이글로시가 들어갔다. 크롬도 좋지만 웅장한 느낌을 주는 이차에겐 블랙이 제격이다. 미국차의 고질병이라는 박한 평가를 받는 단차 문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은 다소 거친 마감으로 비판을 받았다. 실사용에 큰 문제는 아니지만 국산차의 높아진 마감 수준에 길들어지면 눈에 거슬릴 것이다. 다행히도 이 차에서는 찾아볼수 없다.




3열 SUV 중 최고의 소재를 자랑

도어를 여니 프레임에 ‘테네시의 자랑’ 스티커가 눈에 띈다. 대시보드 레이아웃은 CT6와 유사하다. 터치스크린 상단에 위치한 작고 납작한 블로 벤트가 눈을 사로잡는다. 송풍구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요즘에는 실내 디자인의 격을 올릴 수 있는 디자인 포인트다. 이걸 가장 잘 활용하는 메이커가 롤스로이스, 벤틀리, 아우디, 벤츠, 페라리다. 마세라티, BMW, 애스턴마틴의 실내를 구식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바로 송풍구의 디자인 때문인 듯하다. 시선이 자주 머물고 잦은 조작을 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클래식하거나 단순해야 하는데, 어중간한 디자인은 분위기를 깎아먹는다. 그런 점에서 이차의 인테리어는 클래식과 모던함의 균형을 잘 잡았다.




카본제 트림으로 감싼 센터페시아 8인치 디스플레이는 가독성이 좋다. 두꺼운 베젤은 다소 호불호가 갈리지만 정전식 터치 조작계를 품어 비상등, 차선 이탈 경보, 자동주차 보조시스템, 후방 자동 브레이크 등을 제어한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최고의 가죽과 카본이 코어를 감싸 사치품이라는 인상을 진하게 풍긴다. 8천만원대 차에서 여태껏 이런 소재 구성은 보지 못했다. 게다가 메탈 질감을 강하게 전하는 알루미늄 패들 시프터는 만질 때마다 감탄의 연속이다. 리얼 메탈을 적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전자식 기어 노브 주변 전체를 가죽과 스티치를 더해 고급스럽다


1억원이 훌쩍 넘는 차에서도 원가절감을 찾는 메이커들 사이에서 캐딜락은 고급 소재에 집착하고 있다. 이런 집착이라면 언제나 쌍수 들고 환영이다. 시트에 앉아보니 그간 타봤던 캐딜락의 푹신함은 아니지만 뛰어난 홀드성과 좋은 가죽의 질감이 느껴진다. 센터콘솔에는 기어노브와 로터리 다이얼, 운행모드, 휴대폰 무선충전 슬롯이 들어갔다. 유리를 모니터로 바꾼 리어 뷰 미러는 HD급 화질로 낮밤 가리지 않고 쾌적한 시야를 제공한다. 



HD급 화질을 제공하는 리어 뷰 미러. 2열 승객과 눈마주칠 일이 없어 좋다


무엇보다 2열 승객과 눈 마주칠 일이 없어 민망할 일이 없다는 점도 아주 좋다. 1열 시트를 뒤로 당겨도 2열 레그룸은 여유롭다. 몸을 잘 고정시키고 천장은 파노라마 글래스 루프를 더했다. 3열은 2명이 오랜 시간 앉아도 여유로워 그다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트렁크 우측 가장자리에 있는 버튼으로 2, 3열을 접을 수 있다. 동작도 빨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짐을 실을 수 있다.



2, 3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2,229L의 여유 공간이 나온다


완성도 높은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

시동을 거니 뛰어난 차음, 방음 덕에 기대했던 자연흡기 V6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운전모드는 투어/AWD/스포츠/ 오프로드 4가지 중 앞바퀴만 굴리는 투어를 선택했다. 액셀 페달을 깊숙이 밟으니 그제서야 엔진 사운드가 터진다.

1~4단까지는 타코미터의 바늘이 회초리를 힘차게 때린다. 풀가속 시 6,000rpm 부근에서 변속이 되어 굳이 패들 시프터의 조작 없이도 충분히 다이내믹하다. 게다가 자연흡기 특성상 고회전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배기통로가 터보로 막힌 차들과는 비교불가다.



대형 SUV임에도 롤 제어가 훌륭하다


가장 놀란 점은 익숙한 파워트레인인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배기량 3.6L임에도 GM계열 유닛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스펙과 달리 스포츠카와 같은 맹렬한 가속감을 보여준다. 훌륭한 섀시와 신뢰받는 파워트레인의 조합은 와인딩 로드에서도 진가를 드러낸다. 급작스러운 조향에도 노즈를 코너로 집어넣으며 스포츠 세단처럼 롤 제어가 좋다. ‘MRC 댐퍼 정말 좋구나’ 생각했는데, 웬걸 구조가 다른 능동형 댐퍼가 달렸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잘 걸러줬기에 착각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이 차의 서스펜션은 훌륭했다.



도어트림은 디자인만 멋진게 아니라 카본, 메탈, 가죽등 최고의 소재를 넣었다


과급 없이 달성한 38kg·m의 토크는 수치 이상의 강력한 펀치력을 선사한다. 스포츠 모드로 고정하니 네바퀴에 동력을 나누어 노면에 찰싹 달라붙는다. 전자식 기어 노브를 매뉴얼로 놓고 빠르게 반응하는 업 시프트를 즐기며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타코미터 바늘은 금세 7,000rpm을 가리킨다. 6,700rpm에서 최고출력을 쏟아내는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디젤이나 과급기 엔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감각을 선사한다.



대시보드와 스티어링 휠에 카본 패턴의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카본제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블로 벤트는 실내에 세련미를 더한다


다운 시프트가 빠르지는 않지만 SUV라는 걸 감안하면 그리 더딘 편도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몰아붙이니 평균 연비는 L당 7.0km 수준. 고속도로 12.3km/L, 도심 7.7km/L를 달성했다. 대배기량과 무거운 차중을 감안하면 준수한 효율이다. 한산한 도로에서 고속으로 달리는데 스쿨존이 보여 급제동하니 2t이 넘는 차체가 금세 속도를 줄인다. 이 때 앞차와의 충돌 예상 시간 정보를 클러스터에 표시한다.


저력을 발휘할 때다

지인과의 저녁 약속이 있어서 북적거리는 곳에 주차를 하려니 전장 5m의 차체가 자못 부담스럽다. 골목을 한참 돌아다녔는데 주차할 공간이 없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장소를 찾았는데 문제는 평행 주차다. 다행히 자동주차 보조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 핸들을 돌리지 않아도 알아서 주차를 해준다. 차스스로가 제어하니 이질감과 약간의 공포감이 들었으나 평행 주차를 이 정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면 주차가 부담스러운 운전자에게는 정말로 유용한 장비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기능이니 결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서는안 된다.



1열을 뒤로 당겨도 넉넉한 2열의 공간


시승을 마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강인한 직선형 2박스 차체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시험할 시간이다. 그래서 야심한 밤에 깊은 골짜기에 있는 산장으로 향했다. 단단하고 유연한 뼈대와 똑똑한 파워트레인 덕에 비포장도로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낸다. 롤과 피치 각도(전방과 측면에서의 차체 기울기)를 클러스터에 보여주어 오프로드에서 요긴하다.



트렁크 우측 가장자리의 조작계로 2, 3열 시트의 폴딩을 손쉽게 제어할 수있다


그런데 프론티 립이 낮아 푹 꺼진 노면이나 돌부리는 조심해야 한다. 깜깜한 밤 지방 도로를 달릴 때 가장 불안한 요소는 야생동물이다. 불필요한 살생 뿐 아니라 물적 피해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에는 나이트 비전이 있다. 일종의 열 감지 장비로 전방 상황을 실시간 클러스터로 보여준다. 사람이나 동물이 있으면 노란색 마크로 표시해주기 때문에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심리적 불안의 감소는 생각 이상으로 큰 장점이다.



듬직한 모습이 호위무사 같아 마음이 든든해진다


지난해 CT6를 타면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오죽하면 지인들에게 CT6를 강력하게 추천했으니 말이다. CT6가 F 세그먼트의 레퍼런스라면 XT6는 대형 SUV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운전의 부담을 덜어주는 혁신적인 첨단 장비들과 함께 점점 희소해지는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벤츠, BMW, 아우디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품 값은 유지비 부담까지 덜어준다.




캐딜락은 XT6를 통해 SUV 라인업을 강화해 찬란했던 1960년대로의 복귀가 점점 가까워진 느낌이다. 잃어버린 40년에서 많은 교훈을 얻은 캐딜락은 자만하지 않고 묵묵하게 실력을 닦아 여기에 이르렀다. 이제 캐딜락은 본인이 얼마나 강한지 스스로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글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주)자동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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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우 기자 다른기사보기